2009년 11월 11일 수요일

몰스킨 vs. 미도리

늘 한결같은 일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저는 가급적이면 하루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과 떠오르는 생각들을

일기로 기록하려 하고 있습니다.

하지만 '일기'라는 단어가 주는 조금은 정형화된, 매일 밤 하루의 일을 반추하며 적는 그런 모습과는 다르게

회사에서건 집에서건 그냥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적는 편입니다.

올해는 그래도 제법 꾸준히 일기를 적어오긴 했는데, 그 전에는 많이 게을러서

재작년에 마련한 몰스킨 노트를 최근에야 다 쓰게 되었습니다.


연필로 글을 쓸 때면 늘 최고의 필감을 안겨주던 몰스킨 노트였지만,

불행히도 몰스킨의 종이는 만년필과의 궁합이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.

잉크가 잘 번지고 뒤로 새어 나는 것으로 유명하지요.


게다가 줄간 간격이 6mm밖에 되지 않아서, 만년필로 글을 쓸 때면 EF 닙이나 UEF닙을 써야 했습니다.

특히 아무래도 닙이 얇으면 잉크가 적게 나오기 때문에, 뒤에 번지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

작은 닙의 펜이 필요했지요.

물론 제 개인적으로는 플래티넘 밸런스 UEF닙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UEF 닙을 쓰는 것에

딱히 불만은 없었지만, 제가 가진 몽블랑 F닙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것이 좀 불만이었습니다.


어쨌거나 알뜰하게 몰스킨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쓰고 나서,

옛 추억들을 한 페이지 한 페이지 훑어본 다음에 노트를 덮었습니다.

아, 몰스킨의 단점이 하나 또 보이네요.

오래 써서 그런지, 노트 커버의 접히는 부분이 죄 뜯어져서 결국 테이프로 덧대주어야 했었죠.

어쨌거나 이제 과거의 기록이 되어버린 몰스킨을 책장 한 켠에 넣어 두고,

새 노트를 열었습니다.

새 노트는 철저히 몰스킨의 단점을 극복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선택했습니다.

만년필 친화적이며, 줄간 간격이 좀 더 넓고 제본의 내구도가 좋은 그런 노트.

바로 미도리 MD 노트입니다.

이 일본산 노트는 그러나 노트만으로는 내구도가 썩 좋지 않은 편입니다.

예전에는 비닐 커버를 덧씌워 흰색 종이 커버에 오염이 묻지 않도록 했었는데,

최근에는 가죽 커버가 새로 출시되었습니다.

'시간을 들여 만들어 가는 가죽 커버'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이 커버는,

사진에서 보시다시피 원래는 베이지색에 가깝지만, 시간이 지날 수록 햇빛에 타고 손때가 묻어

황토색으로 변해간다고 합니다.

인간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하며 제품의 가장 큰 결점을 은근슬쩍 감춰버리는 지극히 일본적 상술이죠.



커버 없이 그냥 쓰는 미도리 MD 노트는 그리 오래지 않아 너덜너덜해질 것 같지만,

가죽 커버를 씌워 두면 아주 든든합니다.

몰스킨도 이제는 중국에서 만들지만, MD 노트는 아직까진 일본에서 만들고 있군요.



커버의 뒷면에는 펜 홀더가 매립식으로 달려 있습니다. 괜찮은 아이디어입니다.


한동안 제대로 사용될 일 없어서 조금은 속상했었을 몽블랑 솔리테어 1844를 출동시켰습니다.

몰스킨 노트였다면 뒷면이 난리도 아니겠죠?


뒷면에서 보면, 앞에 글자를 쓴 것까지는 보이지만, 뒤로 잉크가 새어나오지는 않습니다.

이 정도면 진정 Fountain-Pen-Friendly라고 불러줄 수 있을 법 하군요.


가지고 있는 만년필들을 총 동원해서 몇 페이지를 사용해 보았습니다.

아무래도 노트의 줄간격이 몰스킨보다 1mm 더 넓은 7mm이고 잉크가 잘 안 번지는 재질이다보니,

F닙으로 쓰는 것도 충분히 괜찮습니다.

일반적으로 EF닙 정도면 글씨를 작게 쓰는 분들에게는 어느 정도 괜찮은 느낌을 줄 것 같습니다.

하지만 플래티넘 UEF처럼 아주 가는 닙으로 쓸 때의 필감은 썩 좋지많은 않습니다.

아무래도 종이가 약간 거칠고 '메마른' 느낌이기 때문에, 너무 작은 닙으로는 종이 표면의 요철이 좀 더

잘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? 아무튼 UEF의 장점이 너무 과하게 드러나는 느낌입니다.


또 하나 안타까운 점이라면, 만년필로 쓸 때의 필감을 극대화시키려다 보면 어쩔 수 없는 것일수도 있겠지만,

연필로 쓸 때의 필감이 썩 좋지많은 않다는 것입니다.

특히 종이의 질이 약간 메마르고 거친 편이어서, 연필 심이 뭉툭해진 상태에서는

흑연이 종이에 고르게 묻지 않습니다. 줄간격이 넓기 때문에 뭉툭해진 연필을 더 잘 즐길 수 있을 거라고

나름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여간 실망스러운 것이 아닙니다.


실망한 마음을 조금 추스리고 나니 오히려 단순한 진리가 와 닿습니다.

결국 모두를 만족시키는 완벽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지요.






댓글 4개:

  1. 최신정보 하나 드리지요.

    여지껏 파버-카스텔 라인에서 볼 수 없었던

    EF촉 출시될 예정입니다.

    뭐 기밀까지는 아니지만 아직 준비중입니다.

    아마 내년 3~4월경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.



    최신정보 따끈한 정보 입니다. ^^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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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2. @Gorany - 2009/11/17 17:40
    오. 좋은 정보 고맙습니다~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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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3. trackback from: Kent의 생각
    몰스킨 vs. 미도리 늘 한결같은 일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저는 가급적이면 하루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과 떠오르는 생각들을 일기로 기록하려 하고 있습니다. 하지만 '일기'라는 단어가 주는 조금은 정형화된, 매일 밤 하루의 일을 반추하며 적는 그런 모습과는 다르게 회사에.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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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4. 잘 보고 갑니다 ^^



    저도 몰스킨 2권째 쓰고 있는데 전 볼펜 사용자라서 괜찮더라구요 ;)



    그런데 미도리 노트 가죽커버 씌우니 정말 멋지네요~ㅎㅎ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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